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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ㆍ허씨ㆍ인천이씨는 한 뿌리
김해김씨(金海金氏)와 허씨(許氏)와 인천이씨(仁川李氏)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는 후손(後孫)으로서
종사(宗事)와 제향참사(祭享叅事)를 같이 하고 있다.
시조 허왕후(許王后)께서는 왕자(王子) 열 분을 낳으셨는데 시조 대왕께서 태자는 왕통을 잇게 하고,
이국에 출가하시어 늘 외로워하시는 왕비를 위로하는 뜻으로 두 왕자에게 모후(母后)의 성을 계승케 하였다.
-김해허씨 입중조는 허 염(許 琰, 태후의 35세손)이다.
-양천허씨 입중조는 허선문(許宣文, 태후의 30세손)이다.
-태인허씨 입중조는 허사문(許士文, 태후의 30세손)이다.
-하양허씨 입중조는 허강안(許康安, 태후의 33세손)이다.
따라서 모든 허씨는 김해김씨로 부터 갈라졌나왔으니 가락의 왕손이다.
인천이씨(仁川李氏)는 허씨에서 갈라져 나왔다.
신라 경덕왕 때에 아찬(阿湌)인 허 기(許 奇, 허황후의 23세손)께서 신라 사신으로 당나라에 주재할 때 안록산의 난이 발생하여 현종(玄宗)이 서기756년에 촉나라로 피난하게 되었다. 그때 위험을 무릅쓰고 허기께서 호종(扈從)하였으며 757년에 난이 평정되어 황제가 도성으로 돌아와서 이를 가상히 여겨 시서(詩書)와 황제의 성(姓)인 이(李)성을 사성(賜姓) 받아 758년에 신라로 환국하심에 신라 경덕왕께서 친히 그 공을 높이여 소성백(邵城伯)의 작위와 식읍(食邑) 1,500호를 봉하여 세습케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허씨에서 이씨가 되었다. 이허겸공(李許謙公)을 1세조(世祖)로 하여 인천이씨 세보(世譜)의 본관 조(本貫 祖)로 삼으니 이 분이 인천이씨의 시조(始祖)이시다.